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 소비의 룰은 철저히 깨져가고 있다. 스마트 모바일 환경의 변화가 그 룰의 파괴를 주도한다. 이 때문에 기존과 차별화된 색다른 기획가 제작방식이 필요해졌다. 문화 콘텐츠의 기획과 방식은 더욱 진화의 폭을 넓혀갈 것이다.
Text.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힘 잃은 문학의 화려한 부활
꾸준한 성장세의 전자책을 주도하는 것은 실용처세서나 시문학도 아닌 소설이다. 일반 문학이 저무는 상황에서 전자책을 활성화하는 것이 소설이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웹소설은 기존의 문학 장르와 차별화된다. 구체적으로 대중문학이며, 순수 문학에서 벗어나 각 장르적인 특징이 강하다. 예컨대, 로맨스나 추리 그리고 무협지 소설 장르에서 강세를 보인다. 19금 소설은 기존의 온라인 서점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온라인 공간이 혼자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19금 콘텐츠를 드러내놓고 즐길 수 없는 문화이기 때문에 더욱 각광받는다.
웹소설은 웹에 연재하는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지 인터넷에 썼기 때문에 웹소설인 것이 아니다. 주제나 서사 전개의 방식이 소설을 즐기는 사람의 취향을 반영한듯이 소설의 구성 형식도 독자의 시선과 의식 흐름에 맞춰 전개된다. 기존 소설은 텍스트가 촘촘하게 나열되어 있지만, 웹소설은 글자가 듬성듬성 있거나 따로따로 떨어져 있기도 하다. 침묵이 이어지는 상황이라면 문장과 문장의 사이가 멀기도 하고, 뚝 떨어지는 느낌도 문장 열을 통해 표현한다. 마치 글자를 통한 웹툰 효과를 보는 듯하다. 웹에 올리는 소설이 아니라 웹 수용자의 인지적, 심리적 특징에 맞게 창작된 소설이 웹소설인 것이다.
자기 색 갖춘 웹툰의 흥미로운 진화
웹툰은 단순하게 인터넷에 올리는 만화가 아니다. 물론 초기에는 만화를 스캔해서 올리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수용자의 특징을 잘 반영한 새로운 창작 영역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고 스캔해 인터넷에 옮겨 그리던 방식에서 지금은 처음부터 끝까지 컴퓨터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바로 유통되고 소비된다. 다른 웹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과 분리될 수 없는 일상이 되고, 이동하는 중에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웹툰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그래서 데스크톱 컴퓨터와 달리 모바일에 최적화된 웹툰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단지 스크롤 방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어내리는 기법보다 진일보해졌다. 한 면에 여러 칸으로 가득 차거나 주욱 내려 읽는 방식을 벗어나 한컷 한컷 움직여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고, 터치 방식을 통해 웹툰을 얼마든지 확대해서 볼 수도 있다. 여기에 무빙툰의 개념이 등장해 움직임이나 효과음도 더해졌다. 단순한 효과음을 넘어서 배경음악도 나오게 됐는데 웹게임에 등장한 OST가 웹툰에도 등장한 것은 그만큼 콘텐츠의 소비 추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스 짐머와 같은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음악작곡가가 국내의 게임 OST를 작곡하듯이 웹툰에도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걸그룹이나 가창력 있는 가수가 게임 배경음악에 참여하듯이 웹툰에도 국내 인기 가수들의 참여가 이어질 것이다.
웹툰은 본래 공짜 개념이 강했다. 때문에 중소 웹툰 사이트는 성고하지 못하고 주로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형 웹툰만 번창해왔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웹툰 사이트가 유료화에 성공할 수 있게 된 건, 웹툰이 자기 색깔을 가지며 다른 포털형 웹툰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와 흥밋거리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맞춤형 콘텐츠
웹드라마 역시 단순하게 웹에 올리는 드라마를 넘어서 스마트 모바일의 환경에 최적화된 콘텐츠의 기획과 구성이 필요하다. 이동 중에 보려면 분량이 적어야 한다. 너무 복잡한 서사구조나 많은 정보가 들어 있어서도 이해와 몰입이 떨어진다. 논리나 합리성보다는 감성과 감각적인 내용이 우선한다. 이 때문에 장르드라마가 주목을 받고 텔레비전보다 배우들의 얼굴이 더욱 클로즈업된 장면 연출이 필요하다. 짧은 분량이지만 다른 회차에 대한 기대감과 흥미를 더 유발해야 한다. 연속극의 속성이 더욱더 강해진다고 볼 수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경우 제작비도 많이 들고 편성권배분 때문에 아무나 만들지 못했지만 웹드라마는 이 제작 주체를 다양화했다. 누구나 웹에 올릴 수 있고 원하는 시청자를 찾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는 연예기획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유명 케이팝 가수들조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1인 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도 이런 스마트 모바일 환경의 심화 맥락에서 비록한다. 1인 미디어 플랫폼을 연예기획사와 같은 방식으로 집적화한 MCN(Multi Channel Network)에 대한 주목도 이 때문이다. 기존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제공해주지 못하는 내용을 1인 방송을 통해서는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라도 원하는 시간에 골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는다. 이제는 개개인이 1인 방송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나서서 1인 콘텐츠 창작자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1인 방송 미디어의 스타들은 주로 예능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중간 가교의 측면에서 큰 성공 사례가 됐다. 웹상의 소통과 지상파 방송의 이원 제작의 융합 사례이기 때문이다. <신서유기>의 경우에는 스타 피디와 포털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웹콘텐츠 성공 사례에 가깝다. 어쨌든 이러한 현상들은 웹 예능 콘텐츠의 바뀐 룰을 말해주고 있다.
콘텐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다
바뀐 룰은 영화 재개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영화 재개봉은 추억 복고코드로 분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디지털 입소문과 IPTV, VOD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성공은 이를 잘 말해준다. 재개봉 러시는 단지 재개봉 현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극장 개봉에 이어 IPTV, VOD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사라져가던 영화가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더 높은 구매가격이 책정되고 명작의 반열에 오르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스마트 모바일을 통해 이러한 재개봉 명작들을 모아 제공해주는 서비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면을 볼 때 스마트 모바일 환경에 맞는 리마스터링 작업이 중요해졌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스마트 모바일 환경의 조성은 모바일 스크린이라는 인터페이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텔레비전과 영화의 시대에는 주로 가로본능에 충실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생각했다. 이런 점은 데스크톱 시대의 컴퓨팅에서도 이어졌다. 하지만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는 인터페이스의 룰을 깨고 있다. 스마트폰을 더이상 눕히지 않고 세로로 두고 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됐고, 실제로 그렇게 뮤직비디오나 영호가 제작되고 있다. 유튜브나 스냅챗 등에서는 이러한 세로본능에 충실한 영상제작 지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세로본능 콘텐츠는 무엇보다 깊이감과 몰입감을 증대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뭇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콘텐츠가 제작되어 다양화된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퍼스널 컴퓨팅을 넘어 스마트 모바일 환경의 성숙은 좀 더 개인들의 취향과 욕구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유행과 별도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콘텐츠라면 언제든 새로운 생명을 다시 불어넣을 수 있는 룰이 생성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표준화된 룰이 아니라 개별적인 콘텐츠 장르의 룰에 대한 탐색과 이를 통한 기획과 제작이 이뤄져야 한다.